창너머 풍경/감성 - 통하는문

여성은 그 자체로 여성이다 - 마이욜의 지중해

다연바람숲 2010. 9. 28. 23:50

 

                                                                                                                                                                            작품명 - 지중해

 

 

 

아, 누드 여인이지요. - 누드 조각가. 마이욜

 

1905년 루이 오귀스트 블랑키를 기념하기 위한 조형물 제작을 의뢰받는 자리에서 클레망소와 미르보가 포함된 건립위원회가 어떤 형태로 조각할 계획이냐고 묻자, 마이욜은 "아, 누드 여인이지요."라고 답했다. 마이욜하면 누드 여인상이 떠오를 만큼 평생을 두고 누드 여인상만을 조각한 조각가이다.

 

고요와 평온이 담긴 소우주를 남긴 조각가
- 여성은 그 자체로 여성이다

 

   마이욜은 때로 자신의 아내를 모델로 조각을 제작하기도 했는데, 1898년 나무에 부조 형식으로 제작한 <원천>이 그렇다. 마이욜은 여성의 신체를 통해서 작은 소우주를 재현하고자 했는데, 그의 소우주는 지극히 고요하고 평온한 세계였다. 1900년부터 마이욜은 본격적으로 테라코타와 브론즈 작품을 제작했고, 마티스가 주물을 도와준 <웅크린 여인>은 나중에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지중해>로 불리게 되었다. 마이욜은 1902년 최초의 개인전을 열면서 세인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때 그는 자신의 거의 모든 작품들을 전시했는데 이때는 태피스트리, 목조, 철조, 석고 조각, 브론즈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 33점이 전시되었다. 특히 <지중해>는 야수파의 주목을 받으며 앙드레 지드는 이 작품을 일컬어 조각의 부활이라고까지 찬미했다. 이 무렵 로댕의 소개로 여러 후원자들을 만나면서 마이욜은 경제적으로도 여유를 갖을 수 있게 되었고, 1908년에는 독일의 미술품 수집가 케슬러(H.C.Kessler)와 함께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마이욜과 함께 이 시기에 활동한 조각가. 로댕과 부르델의 공통점은 조각에서 종교(기독교)의 영향을 배제하기 위해 노력한 이들이라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마이욜은 로마 시대 이후 종교적 테마를 일체 사용하지 않은 첫 번째 조각가로 기록된다. 그는 신을 통해 자신이 바라던 것들을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누차 강조하고 있듯이 서구 사회에서 기독교의 단일신 신화가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엄청난 것이었다. 마이욜은 그런 엄청난 영향력에서 이탈한 조각가였으며, 그후 많은 조각가들이 그의 뒤를 이었다. 1944년 그는 자동차 사고로 임종을 앞두고 "우리들의 시대는 이미 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단지 자연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형태의 조화, 그 건축적 균형에 마음을 쏟는 것에 의해 인체의 지고한 미를 발견하고 그 연구를 통해 위대한 것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실제로 가능할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그가 표현하는 여성은 더 이상 어떤 특정한 여인이나 신화 혹은 성서에 나오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에게 여성은 그 자체로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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