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너머 풍경/열정 - 끌리는詩

편지 / 심보선

다연바람숲 2010. 8. 27. 00:25

 

 

 

 

 

편지심보선

 

 

이곳은 오늘도 변함이 없어

태양이 치부처럼 벌겋게 뜨고 집니다

나는 여느 때처럼 넋 놓고 살고 있습니다

탕진한 청춘의 기억이

간혹 머릿속에서 텅텅 울기도 합니다만

나는 씨익.

웃을 운명을 타고났기에 씨익.

한번 웃으면

사나운 과거도 양처럼 순해지곤 합니다

 

요새는 많은 말들이 떠오릅니다. 어젯밤엔

연속적인 실수는 치명적인 과오를

여러 번으로 나눠서 저지르는 것일 뿐,

이라고 일기장에 적습니다

적고 나서 씨익.

웃었습니다

언어의 형식은 평화로워

그 어떤 끔찍한 고백도 행복한 꿈을 빚어냅니다

어젯밤엔 어떤 꿈을 꾸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행복한 꿈이었다 굳게 믿습니다

 

내 신세가 처량하기도 하지만

이제 삶의 고통 또한 장르화하여

그 기승전결이 참으로 명백합니다

다만 어두움을 즐겨하기에

눈에 거슬리는 빛들에겐

좀 어두워질래? 타이르며

눈꺼풀을 닫고 하루하루 지낸답니다

 

지금 이 순간 창밖에서

행복은 철 지난 플래카드처럼

사소하게 나부끼고 있습니다

그 아래 길들이 길의 본질을 망각하고

저렇게 복잡해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의 페이지들이 구겨지면서

아이구야, 아픈 소리를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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